최 대령은 1950년 6월25일 동해안으로 600여 명의 무장병력을 태우고 내려오던 북한 선박을 5시간 동안 추격해 격침시킨 한국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의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습니다.
이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2차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도 참전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 3회를 포함해 6개 훈장을 받았습니다.
6·25 전쟁 영웅인 최영섭(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93세.
최 전 원장 측에 따르면 최 대령은 이날 새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최 전 원장은 앞서 "부친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최 대령은 6·25 전쟁 발발 이튿날 대한해협 해전에서 북한군 600여명이 타고 있던 적 수송함을 격침시킨 ‘백두산함’에 타고 있었습니다. 대한해협 해전은 해군 첫 승전입니다. 최 대령은 당시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소위)이었습니다.
최 대령은 이후 인천상륙작전 등 6·25 주요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우며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65년 간첩선 나포 등으로 충무무공훈장(3회) 등 훈장을 6회나 받았습니다.
최 대령은 최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북한이 3대에 걸쳐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고 핵무기와 미사일로 수시로 위협하고 협박하는데도 한·미 연합훈련도 하지 않고, 북한 눈치만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남북은 공존할 수가 없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생을 마음 편하게 보내야 하는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면서 "이게 나라냐.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걸 보고 가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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